2010년 1월 27일 수요일

피네간의 경야 그리고 4분 33초

우연한 기회로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라는 책을 접했다.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무려 13년의 기간을 거쳐서 번역되었다는 전설의 소설로 무의식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 있다고 정평이 나있다. 물론 그 난해함은 지독할만한 수준이라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완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는데,그 첫문단을 살펴보면

 "강은 달리나니. 이브와 아담 교회를 지나, 해안의 변방邊方으로부터 만灣의 굴곡까지, 회환回還의 광순환촌도光循環村道 곁으로 하여, 호우드(H)성城(C)과 주원周園(E)까지 우리들을 되돌리도다……"
 

당췌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뉘앙스로 책한권이 펼쳐진다니 정말 기이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피네간의 경야>에 대한 본문과 내용들을 이리저리 찾다가 재미있는 인물을 한 명 발견 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존 케이지' 라는 미국의 작곡가로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 운동을 펼치던 아방가르드 작곡가였는데, 실로 재미있는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1979년 존 케이지는 1979년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를 토대로 [으르릉-오라토리오 Roaratorio]를 작곡하였다는 사실이었다. (존케이지는 뮤지션이 아니라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작곡가다.) 몇 가지 내용을 추가로 덧붙이면 <피네간의 경야>에서 몇 가지 요소를 뽑아내서 '음향의 풍경'으로 창작을 한 존 케이지는 아무 쪽이나 펼쳐 마음대로 변조하고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촬영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70대로 우렁찬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철자와 소리의 변형 또한 우연의 선택으로 뉴욕의 소음과 함께 어울리며 신선한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명 이런 작품 형태는 그의 대표 작품 <4분 44초>와 일맥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 백남준과 함께 가난한 시절을 어울리고 우정을 나누었던 공통 분모를 <4분 44초>에서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는 연주 시간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단지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였었다. 닫았다 몇 분 뒤 다시 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행위로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소리를 죽이고 있는 그 순간의 소리에 주목하게 한 사실이 음악의 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의 작품 <4분 44초>이다. 나도 물론 그 현장에 있지 않았도 또한 제대로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세 개의 악장에 각각의 악장에 TACET(조용히) 라고만 쓰여 있다면 이미 그 현장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상될 뿐이다. 정말 재미있고 놀랍지 않은가?

음악에 대한 신선한 파괴와 접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동안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범위의 예술과 소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4분 44초>였다. 지독한 난해함에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책 <피네간의 경야>를 통해 알게된 작가 '존 케이지'와 음악으로 시도했던 그의 과감함 표현력에 경의를 표하며 음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이를 통한 미래지향적인 시도와 방향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단순하게 유행가 혹은 대중에 기호에 맞추는 한계를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같은 젊은 창작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그의 나이 70대에 시도된 '존 케이지'의 과감함은 고작 20대인 나에게 이미 커다란 일침을 가했고 인터넷이 발달하고 또 사회분위기가 자유로워지며 정작 돌아이들은 많아 지고 있으나 그것이 정말로 순수한 무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특이하고 '아도'만을 위한  영양가없는 개성인것이 씁쓸하다. (뭐 내가 이런말할 자격은 없지만)

분명 음악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시도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지겨운 반복과 공식에 쉴 새없이 소모되고 사장되는 대중 음악과는 다른 무언가를 나는 갈구 하고 또 그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전의백남준 선생님과 존케이지(R.I.P)


넥타이는 맬수도 있지만 자를수도 있다.
피아노는 연주할수도 있지만 부술수도 있다.

-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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