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수요일

괴식에 대한 황교익의 참견

“라면형 과자 ‘뿌셔뿌셔’를 라면처럼 끓여먹고.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함께 섞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일컫는 네티즌들의 신조어다.” 괴식이라는 단어를 찾으니 네이버 오픈국어사전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너구리와 짜파게티의 조합은 짜파구리라 하며 한때에 크게 유행한 음식이다. 나도 분식집에서 먹어봤다. 먹을 만하였다. 뿌셔뿌셔도 끓이면 -자알 끓이면- 아예 못 먹을 음식은 아닐 것이다.

‘괴’자가 ‘괴기한’ ‘괴물스런’의 뜻으로 읽히어 괴식을 “아예 못 먹을 음식”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네티즌이 대체 어떤 음식을 괴식이라 하는지 대충 검색을 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웬만하면 다 먹을 만한 음식이며 또 실제로 먹고 있기도 하다. 평소에 누구든 잘 먹는 음식 두어 종류를 뒤섞는다든지 한국인에게는 어색한 외국의 음식을 두고 괴식이라 하고 있다. ‘괴기한’ ‘괴물스런’ 뜻으로 ‘괴’자를 붙이자면 원숭이의 골 요리라든지 다섯잠 누에 튀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 그러니 네티즌이 말하는 괴식이란 ‘먹기에 거북한 음식’ 정도의 뜻으로 읽혔다. 먹고 죽거나 탈나는 것이 아니면 그냥 먹을 만도 한데 왜 이를 거북해하는지는 따져볼 필요는 있겠다.

지난해 이맘때다. 아마존 원시 숲에 살고 있는 야물루 가족이 최수종․하희라 가족과 한국 여행을 하며 겪는 일을 방송한 적이 있다. 야물루 가족은 라면, 불고기는 맛있게 먹었지만 생선회는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날생선을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기겁을 하였다. 가장인 ‘후’가 먼저 시식을 하는데, 극약을 입에 넣는 표정이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켰고, 다시는 먹으려들지 않았다. 나머지 가족들은 아예 먹지 않았다.

아마존은 생선이 풍부한 지역이다. 야물루의 부족은 이 생선을 구워서 먹는다. 원시의 생활을 하는데 날로 먹을 수도 있지 않겠냐 싶지만 그런 일은 없다. 날로 먹으면 탈이 나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 부족의 역사에서 날생선을 먹었다가 큰 고생을 한 경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날생선은 먹지 못하는 것으로 철저히 교육되었을 것이다. 막 걸음마를 뗄 때부터 날생선을 입에 가져갈라치면 “에비! 에비!” 하며 빼앗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날생선 금기가 부족의 전통으로 만들어지는데, 더 확실한 교육을 위하여 이런 말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날생선은 아직 물고기의 영혼이 남아 있어 그걸 먹으면 몸에 비늘이 돋고 물고기가 돼” 같은. 신화와 전설은 보통 금기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사용된다.



야물루 가족의 일을 한국인의 ‘괴식 담론’에 대입하면 한국인이 왜 특정의 음식을 두고 괴식이라 하는지 가닥이 잡힌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두고 괴식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죽거나 탈이 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보이며, 복불복 게임에나 쓰이는 까나리액젓처럼 아주 짜거나 맵거나 하여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는 음식이 아님에도 앞에 놓은 음식을 괴식이라고까지 이르는 현상이 내게는 오히려 괴기스럽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가 ‘괴식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괴기스럽게 생각한다. 이건 본능이다.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꺼린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하여도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있으면 입에 넣게 되고, 이게 점점 익숙해지면 즐기게 되어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음식은 이처럼 익숙함과 결별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늘 같은 것을 먹겠다고 고집하였으면 지구는 참 재미없는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이같이, 기존의 재료와 조리법이 주는 익숙함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무엇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새로움에서 얻는 희열과 익숙함에서 얻는 평온, 이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나, 보통은 젊은이는 늘 새로우려고 한다는 것이 인간의 오랜 전통이었다.

한국은 젊은이들에게 편한 세상이 아니다. 일자리는 별 따기이고 결혼은 아예 포기하고 산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수가 준동을 하게 된다. 일상의 음식에서 괴식을 찾아 분류하는 일은 젊은이의 보수적 일탈일 수 있다. 또한 괴식의 소재가 되고 있는 음식이 대체로 젊은이들이 늘 먹는 인스턴트 음식인 것을 보면 이 일탈은 자학적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가 어려운 시대에, 괴식이라는 말이 떠돈다. 미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찰 그 나이에.

글.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좋아요

Blogger templates

Search This Blog

Blogroll

Pages

Pages -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