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너는 말야

음악으로 말하자면 재즈
음식으로 말하자면 오믈렛
신발로 말하자면 닥터마틴8홀
도시로 말하자면 뉴욕
영화로 말하자면 미셸공드리
길거리로 말하자면 경리단길
그림으로 말하자면 모딜리아니
소설로 말하자면 밀란 쿤데라
고기로 말하자면 한우
랩으로 말하자면 빈지노
노래로 말하자면 박정현
연기로 말하자면 샤를리즈 테론
혁명으로 말하자면 체게바라
보석으로 말하자면 루비
화장품으로 말하자면 록시땅
컴필레이션으로 말하자면 메종키츠네
연속극으로 말하자면 네 멋대로 해라
계절로 말하자면 봄
음원사이트로 말하자면 멜론


그게 너라고.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자문자답

진짜믿는것은?
-나 자체 그리고 날 믿는 사람,
세부적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짐승같은 성실함
날 믿는 사람에 영혼

도저희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박근혜 당선,아이돌 유행,물질만능주의

서울에서 좋아하는 것
-서울 사람들

서른 살?
-많은 걸을 얻으려 하기 보다 가진것을 지키려 노력했던 시기

가장 멋진 브랜드
-빔스,비즈빔,바운티헌터,베이프,헤드포터(요시다가방)등
일본로컬브랜드로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

뭐든 살 수 있다면?
-시간,그 사람의 시간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들
-수원시,노래를 좋아한 아버지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신 엄마
,집에 수북히 쌓인 테이프,CD,만화책들


다음 대통령?
-문재인


과대평가
-한국여자


과소평가
-흑인



-가진만큼 갖는 삶,사소한것에 행복할 줄 아는 자신,
사랑하는 사람과 한국뜨기


2015년?
러브&피스&성공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그 겨울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서울 맛집



고독한 미식가st.
일주일에 한번, 적어도 한달 에 
한번씩은 들리는 
따뜻한 음식이 나오는 집들
화려한 식감도 그럴싸한 분위기도 없지만,
내게는 집밥만큼이나 소중한 단골집.
(혼자서도 잘먹어요.)

신촌 [부탄츄]
토코돈고츠라멘 7000\
(밥,사리 1회 리필가능)


신촌 [공명]
짬뽕 곱배기 6500 \

을지로3가 [동경우동]
튀김카레콤비(튀김우동+카레라이스)
5500\~6500\

마포 [원조떡볶이]
떡볶이 2000\ 튀김(3개) 1000\ 오뎅(4개) 1000\
효창공원역 용문시장 [부산오뎅]3000\
Take out (feat.백화수복)
신촌 [오빠네 옛날떡볶이]
떡볶이 2500\

이대 [샤브선생]
양고기 샤브샤브 13800\
(야채 무한 리필)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몇 가지


1.엄청나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의문스럽지만 , 나름대로 빡빡함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 중인 상황. 올해는 제주도,개성시(북한),중국 청도까지 평생 가볼 것 같지 않았던 곳들을 방문했고, 또한 울산도 두번이나 찍고 부산,춘천까지 다양하게 올해는 투어 비스무리한 행진을 하고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경험은 참 값지도 소중한거니까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본다.

2.솔로생활도 이제 슬슬 적응이 되가는 듯. 유난스럽게 '초식남'이란 타이틀까지 붙여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건 어찌보면 허세 of 허세 일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못 버틸꺼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초식남'으로 살래. 아직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기도 받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랍니다.

3.인스타그램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 점점 내리막으로 떨어지고 있는 SNS중에서는 참 즐거운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다. 불특정다수가 더 많아서가 가장 큰 이유일테지만 , 때로는 너무나도 가벼운 소통에서 커다란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게 새삼 놀랍다.
(instagram:supaxsonick)

4.겨울이다. 진짜 리얼한 겨울.입김이 나올것 같이 추워졌다. 하지만 나는 두꺼운 겨울 옷이 없다.(봄버나 패딩,항공점퍼따위) 올해는 꼭 빵빵한 겨울옷을 사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이것저것 구경해봐도 도무지 작고 외소한 나에게 어울리는 빵빵 웨어는 없는 것 같다. "그래 여기가 러시아도 아니고,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라는 마음에 또 엄한 가죽자켓을 사버렸다. 분명히 후회할꺼다. 그리고 올 겨울도 또 추위에 떨겠지. 코트와 가죽자켓으로 또 겨울을 버텨야 할 것 같다.

5. 생계유지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잠깐 생각했을때는 별 거 아니고 몹시 가벼워 보일 수 있는 행위로 보이나, 실제로는 인생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물론 11월에 이런 저런 사건들이 겹치면서 과연 내가 내 밥벌이를 잘 하고 있는 건지..그리고 앞으로 내 삶이 이대로 좋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예술가 흉내내기'를 중단해야 할 시점일지 아니면 '진짜 예술가'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것들..어찌됐건 당분간은 판단 유보 상황이다. 매일같이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겠지만, 상황에 맞게 만족하며 살고 싶어.(행복하게)

-이상 2014년 11월 25일 근황 및 단상

편의점 알바녀 역관광 썰

작년 봄부터 시작해서 올해 여름에 끝난 일이다. 아직 도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치가 떨린다. 

나는 편의점 사장임. 서울 모 대학 근처에 편의점을 4 개 가지고 있음. 



대학 졸업하고 부모님이 유산 미리 떼 가라 하셔서 2억원 정도 주셧고 

그걸로 편의점 한꺼번에 4개 차려서 골목 상권 독점함. 덕분에 먹고살만하게 살고 있다. 결혼한지 2년된 신혼 임. 

편의점 4개를 내가 돌아가면서 관리하고 보통은 알바 생들이 상주하는 시스템임. 

2호점 평일 야간 알바가 원래 근처 대학생이엇는데 이 친구가 군대를 가야한다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알바 모집 공고를 냈음. 근데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2호점이 직영점이라 평일 야간은 6200원인가 줬어야 했던걸로 기억한다. 



보통 직영점 평일 야간은 그만둘때 전임자가 지인에게 넘기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 음. 



시급이 높으니 생각보다 연락이 많이 왔음. 

면접을 열명정도 봤던걸로 기억하는데 23살짜리 키 작 은 여자애가 굉장히 의욕이 있어보이더라고. 

지방에서 올라와서 현재는 휴학중이라는데 부모님 손 벌리는것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원했다고 하더 라. 



그 정신이 기특해서 뽑음. 

처음 한달정도는 일을 무난하게 잘 했다. 



편의점을 4개 나 굴리니까 알바생 숫자도 꽤 되어서 나름 사장이랍시 고 분기별로 알바애들 모아다가 조촐하게 회식을 한다. 

회식이래봤자 근처 싸구려 고깃집에서 삽겹살에 쏘주 하는 정도? 



그리고 보통 1차에서 기분좋게 끝내고 집 에 감. 늦으면 마눌님 화내심. 

3분기 회식이 되었고 새로뽑은 여자애도 그 자리에 참 석했다. 



나도 나이가 젊고 알바애들도 다들 20대들이 다보니 분위기도 화목하고 암튼 그럼. 

1차가 거의 끝나갈때쯤에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새 로운 여자애가 술이 좀 취했음.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붙잡고 '사장님 2차 가면 안돼요?'하더라고 

나는 사실 집에 가고싶었는데 그날 분위기도 괜찮고 해 서 다섯명이서 2차를 가게 되었음. 2차는 맥주. 

여자애 둘에 나포함 남자 셋이었는데 두시간정도 지나 니 여자애는 신입 하나에 나랑 1호점 평일 주간 이렇게 셋이 남음. 

근데 여자애가 정작 지가 2차가자 하고서는 별 얘기도 안하고 멍때리고 있길래 이제 슬슬 집에 가자~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음. 

아직도 진짜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여기서 그 년 무릎에 눈물이 투둑 하고 떨어지더니 엉엉엉 오열 작렬함. 

호프집 사람들 다 우리 쳐다보고 난 존나 당황빨면서 ' xx야 왜그래' 작렬. 상황 수습하려고 노력함. 



알바놈도 당황빨아서 어쩔줄 몰라하고. 

다행히 좀 진정되고 나니까 이년이 갑자기 '사장님 둘 이서만 얘기하고 싶어요..'라고 함. 



난 그래서 알바놈은 집에 보내고 둘이서 맥주 한잔 더함. 

얘기를 하자고 해놓고 이년이 별 말이 없길래 무슨일인 데 그러냐, 말을 좀 해봐라 하고 잘 구슬렸음. 

내가 성격이 다른 사람들 좀 잘받아주고 그래서 대학때 부터 이런식의 여자애들의 고민상담 같은게 많았다. 



와 이프도 원래 학교 후밴데 이런식으로 고민상담하다가 눈맞아서 연애하다 결혼 골인함ㅋ 

내가 잘 구슬리니 썰을 풀기 시작했는데 썰의 내용은 이러했다. 

동향에서 올라온 학교 선배랑 사귀고 있는데(반동거 상 태) 임신을 해서 어쩔줄 모르겠다. 

일단은 내가 잘 달래고 위로해주고 집에 보냈음. 



이때 까지만 해도 사장님 너무 고맙고 착한사람이라고 감사 하다고 연신 굽신굽신했다. 

그 후 며칠 더 일을 나오다가 갑자기 전화가 왔음. 자 기 병원가야된다고 일을 며칠만 쉬면 안되겠냐고. 

그래서 나는 애가 불쌍해서 그래도 된다 했고 몸조리 잘하라고 하고 끊으려했음. 



근데 자기가 지금 현금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20만원 정도만 빌려주실수 있냐 하 더라고. 

여기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음. 



물론 애 가 성실하고 착한것 같긴 했는데 한달 일하고 20만원 빌리는건 좀 매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얘가 어차피 어느학교 무슨과인지도 알고 민증 사 본도 나한테 있는데 20만원 갖고 튀진 않겠지 싶었음. 



그래서 20만원이랑 미역국 먹으라고 5만원 더 해서 2 5만원 송금함. 

3일 후부터 이년 다시 출근함. 3일간 땜빵은 당연히 내 가 메우고.. 그리고 다녀와서도 연신 감사하다는말을 연발했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나는 솔직히 뿌듯한 마 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년의 두번째 월급날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문 자가 왔다. 

'소송이 접수되었습니다' 

????? 

전화해서 확인해보니 이년이 문자그대로 날 고소함. 고 소내용은 양육비 및 정신적 위자료 청구였다. 



나는 뭔 가 착오가 생겼거니 했는데 확인해보니 진짜였음. 레알 뒤통수가 띵하더라. 

이년한테 전화하니까 전화는 안받고 출근도 당연히 안 함. 그야말로 잠수. 

당황빨았지만 바로 대한법률구조공단 찾아가고 지인을 통해 변호사 선임하고.. 



빠른 대응으로 아주 발라버리 려 했는데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내가 돈을 송금한 점. 통화가 녹음이 안되어있어 서 무슨 명목으로 전송했는지 증명이 불가능했다. 



이때 존나 후회함. 착하게 살면 손해인것같다. 이년이 아주 제대로 노린거임. 

그리고 그날 호프에서 알바놈 집에 보낸것도 문제. 



이 년이 연락이 안되니까 혹시나 해서 알바놈에게 연락을 해보니 알바놈한테 이미 그년이 연락을 했다고 했었다. 

또한 이 멍청한 알바놈은 되려 나와 그년의 사이를 의 심하고 있었던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한것 같기도 한데 이색기가 내가 사장이니까 앞에선 협조적으로 굴것처 럼 했었는데 



결정적일떄 전혀 도움이 안됐다. 그래서 이 일 끝나고 눈치좀 주니까 지가 알아서 관둠. 

아무튼 확인해보니 그년이 알바놈한테 전화해서 증언 비슷한걸 요청해놓은 상태. 

나는 진실로 결백했기에 법정가서 발라버리자! 라는 마 음가짐이었는데 변호사의 말은 좀 달랐다 

입증이 안되면 털리기 딱 좋다는 것. 

더구나 이 당시가 고대의대 사건이 처음 수면에 떠오를 때라 강간 성추행 이런거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안좋을 때였다. 



여론이 판결을 좌지우지 하는건 아니지만잘못 해서 엮이면 인생 퇴갤까지 딱 좋은 코스로 갈 수도 있 겠구나 싶더라고. 

일단 임신중 친자확인을 알아보니 국내에선 불법이었 다.. 



해외까지 나가서 해온다고 해도 그년이 동의를 안 할 가능성도 높고 



불법인 이상 법정에서의 효력이 없을 가능성도 높아보였다. 



그래서 출산까지 기다리기 위해 맞고소 준비도 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시간 을 끌었다. 

그 와중에 그 년네 집도 찾아가보고 했는데 문은 절대 열어주지 않았다. 



연락 해도 법정에서 보자 이런소리만 하고. 



이런 사실들을 적시해봤자 재판에서 큰 도움은 안된다고 했지만 일단은 보낸 문자, 받은 문자 다 보관 해놨었다. 

근데 이게 시간을 끌다보니 가을쯤에 와이프한테 걸렸 다. 



내선에서 끝내려고 헀는데 자꾸 내가 멘탈 도 좀 안좋고 바쁘고 하니까 와이프가 의심하다가 입출 금 내역을 조회했다. 



그리고 변호사 선임비를 발견하고 아주 집구석이 뒤집어졌었다. 이때가 8월 말쯤. 

와이프 설득하는데 거의 한달이 걸렸다. 



엄밀히 말하면 와이프에게 나의 무고함을 설득하는데 한달, 이 일을 같이 헤쳐나가도록 설득하는데 또 한달 걸렸다. 



간통죄 로 고소한다, 이혼하자 이야기까지 나와서 아주 한달은 개고생씹고생. 



와이프가 친정집가서 잠수타기도 하고.. 친정집 앞에가서 하루종일 기다려서 설득했다. 



진짜 그 년때문에 내인생 아주 좆될뻔했다. 

와이프가 나의 편의 되기로 한 다음부터 일이 좀 수월 해졌다. 



와이프가 자진해서 그년을 설득하러 갔다. 와 이프가 누군지 모르는 그년은 결국 와이프를 만났음. 



물론 사건의 전말같은건 말하지 않았지만, 와이프 말로 는 그년이랑 그년 남친이 공모한 일 같다고 했다. 



처음 에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와이프가 이제는 내 편이 되 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와이프는 그년에게 친자확인검사드립까지 쳤다 고 했다. 



그때부터 그년이 쫌 쫄기 시작했는데 결국 협 상은 결렬되고 그년은 그 이후로 와이프를 만나주지 않 게 되었다.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뿔이 나서 나를 병원 으로 데려가 친자확인검사를 준비시켰다. 



그년이 출산 을 하면 친자확인검사를 하고 바로 승소후 역고소 ㄱㄱ 하자고 부부끼리 대동단결했음. 

그러던 와중 와이프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하 고 나서 와이프의 멘탈은 더욱 강해졌고 오히려 나의 생활은 안정적이 되어갔다. 



역경이 있으면 부부는 강해 지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11월쯤 그년에게 청천벽력같은 연락이 왔다. 



2주전에 유산을 했고 지금은 퇴원했다는 것. 이 미 태아가 없어져버린 상태라 친자확인은 물건너간 상 태고 



법정 공방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우 리측 변호사도 그년이 친자확인을 피한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해졌지만 



물증이 날아가버린 상태이기에 아마 일방적인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 했다. 



오히려 합의를 추천했을 정도. 

실제로 그년도 합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연 락을 해왔다. 



사태의 국면이 이렇게 흘러가니 와이프의 기세도 갑자기 누그러졌다. 



임신까지 겹쳐 감정기복때 문에 다투는 일도 생기곤 했다. 

그러던 와중 나를 구원할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친자 확인 검사를 위해 준비한 검사의 결과가 나온것. 







그리고 나는 무정자증임이 밝혀졌다.


출처: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368&l=256509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SONY 새식구들

SONY XPERIA E1 PURPLE
 가격대비 상당한 만족도를 자랑하는 전화기,
소니다운 소니만에 디자인과 심플한 기능들
아주 귣

PS4 DUALSHOCK 4
듀얼쇼크패드가 하얀색이라
형형색색 실리콘 커버와 아날로그 스틱커버를 장착





SONY FDR-AX1 (4K)

우리 프로덕션에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물건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Steady Soundz meets VENUE 11월 14일 이태원 베뉴








2014/11/14 (FRI)
Steady Soundz meets VENUE
11 14() 클럽 베뉴 / 이태원 (Seoul)
                                                  
입장료 : 무료

Line Up:
23:00 - 01:00 DJ Spray
01:00 - 03:00 DJ Superboogie
03:00 - 05:00 DJ Syunman 

힙합 장르를 중심으로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크루, 스테디사운즈가 이태원에 음악역사와 함께한 클럽 베뉴에서 14 23:00부터 파티를 진행한다.

이번 파티에 초대된 뮤지션은 세계 비보이 대회에서 디제이를 맡고 브레이크 비트 프로듀서로 널리 알려진디제이 스프레이 게스트로 참여해 프레시하고 댄서블한 비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클럽 베뉴의 메인 시간대에는 스테디사운즈의 디제이 프로듀서인디제이 수퍼부기 리얼한 턴테이블 믹스로 재미지고 묵직한 플레이를 예정이고 스테디사운즈디제이 션만 퍼커션 퍼포먼스와 함께 다채로운 흑인음악 장르의 디제잉으로 금요일(14) 지루하지않는 라인업으로 오프닝부터 이태원을 오리지널 힙합으로 달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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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스테디사운즈 
식구들과 함께하는 파티입니다.
컨셉상 아쉽게도 마이크는 못잡게 되었지만 ,
 좋은 취지의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파티인만큼 뜨겁게 더 뜨겁게 파티피플들과 함께 할게요.
힙합 좋아하시는 분들은 무료입장이니 
잠깐씩 오시는것도 좋고
죽치고 끝까지 계시면 더 고맙습니다.
앞으로 스테디사운즈의
 뮤지션들의 활동도 슬슬 개시하려하니
기대 많이 해주시고 
당일날 모르는 분들 아는척 환영합니다.^^



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빵형- 브래드 피트가 아내에게 쓴 편지

내용이 너무 진지하여 사진은 키치한것으로



아내가 아팠습니다. 

끊임없이 신경질적이 됐고, 일에는 문제가 생겼죠. 

아이들과도 계속 갈등을 겪었고, 가정 생활도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아내는 몸무게가 14kg이나 줄었고, 35년의 인생 동안 처음으로 40kg까지 체중이 떨어졌습니다. 

너무 말랐죠. 게다가 아내는 끊임없이 울었습니다. 

어딜 봐도 행복한 여인이라곤 할 수가 없었어요. 

두통이 끊임없이 아내를 괴롭혔고, 심장도 아프다고 했으며, 등과 갈비뼈 주위의 신경 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호소했죠. 

잠도 제대로 자질 못했어요. 

아내는 아침에나 간신히 잠이 들곤 했는데 당연히 하루 종일 피곤해 했습니다. 

우리 결혼 생활은 파국 직전까지 몰렸던 겁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여인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어요. 

눈 아래에는 깊은 다크서클이 패였고, 그녀는 늘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포기했죠. 

아내는 더이상 영화도 찍지 않겠다고 했고 어떤 배역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난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곧 이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어요. 

하지만... 난 뭔가 해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남자였으니까요. 

내 아내는 지구상의 남자와 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우러러보는 아이돌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여인 옆에서 잠들 수 있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을 수 있도록 허락된 남자였죠. 

그래서 난 꽃을 사다 아내에게 바치기 시작했어요. 

키스를 퍼부었고, 칭찬을 멈추지 않았죠. 

깜짝 선물을 사왔고, 매순간마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오직 그녀만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설 땐 늘 아내 얘기만 했고,그녀가 이끌어 가는 방향대로 변화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녀의 친구들, 또는 우리가 함께 아는 친구들 앞에 서면 늘 아내를 칭찬했죠.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이후 아내는 예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몸무게가 다시 늘어난 건 물론이고, 신경질적이던 증상도 사라졌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나를 그 어느때보다 더 사랑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나 많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요. 

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요. 

-브래드 피트-

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아마추어들에게 드리는 일곱 가지 충고-신해철



신해철의 음악에세이 6 

필자는 올해로 프로 데뷔 8년째를 맞고 있다. 과연 그간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행동한 것이 그 중 몇 해나 되는가 생각해 보면 부그러움도 없지 않으나 어쨌건 간에 '10주년 기념음반'이라거나 '원로가수' 등의 농담을 주위에서 쉽게 던지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는 심심치 않게 후배님들이 도움을 청하거나 음악 지망생들이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해서 이번에는 그분들께 일일이 만나서 전하지 못하는 말들을 지면을 통해 정리해 보았다. 주의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부분이 많으며, 음악에는 왕도 따위는 없으므로 필자의 말을 절대적인 진리 혹은 유일한 길로 생각하는 일은 없도록 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많은 선배분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스리 이런 글을 쓰고 있음을 용서해 주시기를. 

아마추어들에게 드리는 일곱 가지 충고 

첫째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라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왜 음악을 좋아하는가'라든가 '음악을 위해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조차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질문들을 어떤 특정한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무작정 좋아서'라는 것이 가장 감동적인 대답일 수도 있다. 또 이런 유의 대답은 평생동안 생각해야 하는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곤란하다. 세상에는 심오한 사상을 표현하는 아티스트 만큼이나 '잘 노는' 엔터테이너도 필요하다.'그냥 무대와 조명, 사람들의 환호가 좋아서'라거나 심지어는 '돈 벌고 싶어서'라는 대답이라고 해서 '음악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어서'라고 거창하고도 진지한 생각보다 반드시 우수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비슷하게조차 규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음악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성공하기엔 늦은 나이라는 뜻이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음악의 길로 돌아오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도 늘상 괴로워한다. 자기 자신을 속인 보복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거짓말은 위선을 낳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자기 자신을 가둬버린다. 초창기 몇 년 간 일이 잘 풀린다면 그나마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결국 평생 음악을 위해 몸바치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자라면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음악 자체를 목적으로 하라 

물론 인기나 명성, 돈 같은 것도 목적으로서 나쁘지 않다. 그것은 당신에게 투쟁본능과 경쟁심, 성취 동기 등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위에 음악 자체라는 순수한 목적을 두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벽에 부딪치게 되고 좌절할 때, 당신이 '음악'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절대 당신을 배신하지 않고 불빛이 되어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또, 모든 명성과 부가 사라진 것을 인정하게 된 순간, 혹은 당신의 능력으로는 애초에 그것을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에도, 당신이 순수한 열정을 바쳐 음악을 사랑했던 순간들을 후광처럼 남아 결코 당신의 모습을 초라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만큼 음악을 했으면 뭐 남은 게 있어야 할 게 아니냐라고 말하는 선배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 '처음부터 뭘 남길려고 시작하셨나부죠'라고 대답하라. 소위 전성기가 지나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처지가 되어있어도 자신의 시대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선배들, 그들은 단순히 옛 영화를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과 시간,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비틀즈의 거대한 명성도 항상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레드 제플린에게 차트의 수위를 내 주었고 자신들의 제국이 서서히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비틀즈의 해산에는 이런 위기감이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들과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을 것들을 구별할 수 없다면 당신의 음악 인생은 피곤할 것이다. 

셋째와 넷째 부지런히 하되, 서둘지 말라 

사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좀 게으른 편이긴 하다. 일상 생활에서 게으른 것은 그렇다 치고, 심지어는 흔한 데모 테이프 하나 제작해 제작자를 찾는 성의도 없으면서 방구석에 앉아 베짱이처럼 노래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친구 누구는 운이 좋아 데뷔했는데 난 지지리도 운도 없다는 등의 얘기나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뮤지션이 좀 부지런할 필요가 있다. 체계적으로 음악을 가르쳐 주는 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특히 단순한 싱어 이상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의 외국어를 습득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서적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들어야 보아야 한다. 음향에 관한 책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 때 물리.수학은 담을 쌓던 내가 왜 이제와서 이 짓을 하나라는 푸념이 나오고 기타리스트라면 인문계 학교를 나왔어요 피복 전선 벗기고 납땜질하는 일은 눈깜짝할 사이에 해야 한다. 드럼 주자는 자신이 음악인인지 공사장 인부인지 확신이 안 갈 때 가 있다.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를 최소한의 전자지식 없이 마스터하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 소리 듣기 딱 맞다. 그나마 프로로 데뷔한 후에 개인 공부 시간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 결국 평소에 쟤는 하는 일도 없이 뭐가 저리 바쁘냐 소리 나오게 움직여 놓아야 훗날이 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대한 서두름은 모든 것을 망친다. 오히려 채 여물기도 전에 일찍 데뷔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대성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제 어느정도 알 것도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면' 한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굳어져버린 대중의 선입견 때문에 쓸쓸히 사라져가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또 누차 강조하지만 프로로 활동을 시작하는 경험이라는 면에서는 빨리 숙달되지만 개인의 연습 시간은 아마추어 시절에 비해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데뷔 이전의 시간을 신세 한탄에 쓰기보다 개인의 발전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개인적으로 미숙할 때 데뷔하여 고생한 기억은 필자에게도 매우 뼈저린 기억이다. 

다섯째 옆길이나 뒷문은 생각도 말아라 

필자가 선배랍시고 알량하게 던질 수 있는 충고 가운데서 그나마 최근의 후배님들에게 가장 추궁하고 싶은 부분이다. 필자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실력으로 데뷔하여 선배들의 충고 한마디가 눈물나게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후배들의 조언 요청이 들어오면 바쁘건 안 바쁘건 무조건 응하고 본다. 그런데 고작 질문이란게 모 가요제는 정말 로비가 존재하느냐는 등, 자기 친척이 방송국 프로듀서인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등, 이제 판이 곧 나오는데 자기 매니저가 워낙 약하니 피알의 비법이 없겠냐 등등 도저히 이 지면에서 이야기하지 못할 소리까지 뻔뻔하게들 뱉어댄다. 어느 종류의 가요제건 상이 누구로 내정되어 있다더라부터 시작해서 온갖 억측이 구구하고, 자기가 안 되는 건 빽이 없어서요, 남이 잘 되는 건 운이 좋아서랜다. 이런 풍토는 데뷔 후에도 이어져 자신이 올라갈 생각은 안하고 동료들 흠이나 잡아 끌어내리기에 정신이 없다. 신인은 기성보다 음악을 잘 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불러 일으킬 신선함과 도전 정신이 강점이다. 아무리 세태가 험하다지만 신인들 입에서 이렇게나 찌든 소리만 나와서는 비참하다. 오히려 피알이나 매니지먼트는 기성 가수의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 신인들의 부상 여부는 음반 내용에 의해 90%이상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평생 헛일만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대중음악계에도 부정부패는 있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필자는 대중음악계의 부정부패가 신문에 보도되는 사회 각계의 그 수많은 부정에 비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연예계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동네북이 되어 주는 편리함을 가지고 호구 노릇을 해온 죄가 추가될 뿐이다. 오히려 대중음악계는 최후의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최후의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대충 시덥지도 않은 노래로 방송에 얼굴이나 비치고 순위에나 올라 있는 의심스런 인물들을 직접 확인해보라. 레코드 가게 가서 누구누구 판 좀 나가나요라고 물어보면 알 것이다. 주인 아저씨 왈:...(피식 웃으며 대답도 안 함)...심지어 주간 방송 횟수 1위에 올라 있는 곡도 판매량은 명함도 못 내미는 경우가 있다. 대중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지금 우리 대중음악계의 빅스타들 중 그 누가 실력 이외의 것에 의존해서 그 자리에 올라왔는가. 서태지의 등장은 기성세대를 처절하게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누가 대중음악계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지 증명했다. 매스컴의 혹평 속에 데뷔한 그가 피알로 된 가수인가. 신승훈은 첫 앨범 발래 한 달만에 스타로 등장했다. 신승훈이 재벌집안이라서 자신의 앨범을 스스로 단시간에 그것도 그 엄청난 양을 사들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봄여름가을겨울은 10년째 당당히 모습을 지키고 있다. 그들에 '장사'에 일말의 관심을 가지던가. 'Only 방송용'의 가수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인조스타'라고 해서 펄쩍펄쩍 뛸 필요도 없다. 물 위에 태풍이 친다해서 물 밑까지 호들갑 떨겠는가. 민주국가니까 싫으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조용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다니면 된다. 과연 인조 스타들이 긴 수명을 누린 경우가 있었던가. 당신에게는 물론 '옆길'과 '뒷문'으로 들어가 그들의 일원으로 합류하는 길도 있다. 단 100일 천하가 끝난 후 나머지 인생을 어떤 직업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섯째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아마추어 시절에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혹독한 비판을 가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저 모양으로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목청을 높이기도 하고, 내가 프로로 음악을 하게 되면 죽어도 저렇게는 하지않겠다라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그러나 막상 실제 일에 임하게 되면 이론이 무용지물이 되고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격렬하게 비판했던 모습대로 자신의 작품이 만들어져버린 걸 깨닫는 순간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이런 남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해 부수고 나가는 길밖에 없다.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면 갈수록 문제점은 끈질기게 뒤를 좇아온다. 최근 대중음악계는 기성들에 의해 실험이 이루어지고 신인들은 소위 안전빵의 곡을 발표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핑계없는 무덤은 또 없다. 이번 음악은 발라드지만 성공하면 록을 하고 싶다느니 언젠가 '여건'이 되면 어떤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느니 한다. 신인들의 데뷔 인사 또한 천편일률이어서 모두가 '부족하지만 예쁘게 들어 주세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족하면 판을 내지 말고 공부를 더 할 일이다. 신인이 할 일은 자기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확보하는 것이다. 시류를 거스르며 혁신적인 음악으로 데뷔한 서태지는 최고의 아이들(idol)임과 동시에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그가 신인이기에 가능했다. 신인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장점을 보지 못하고 안전빵만 바란다면 대중음악계는 영원히 2류 가수만이 우글거릴 것이다. 

일곱째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라 

이 두 가지 중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단. 그리고 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라. 두 가지가 일치한다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은 저음의 목소리인데 록을 하고 싶다고 치자. 어떤 선택이 옳을까. 

1. 혹시 고음 개발의 여지가 있는지 연습에 몰두한다. 

2. 저음으로도 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스타일의 록을 개발한다. 이것은 본인이 단순 가수 이외에 작.편곡이나 디렉팅의 능력이 있을 경우에 한한다. 

3. 다른 장르로 전환하되 록과 퓨전의 형태를 취한다. 

4. 완전히 다른 장르로 전환한다. 

5. 되건 말건 그냥 한다. 

위의 예 중 1과 2는 성공률이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3과 4가 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가 가장 훌륭한 경우라고 본다. 문제는 5인데, 1에서 4를 다 고려한 후, 5를 택했다면 당신은 멋진 고집장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5를 하고 있다면바보거나 정신병자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지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공이 목표냐 과정이 목표냐 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관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노래를 잘 하는 것과 가창력이 있다는 것의 차이도 알아 두자. 또, 잘 하는 노래와 잘 되는 노래의 차이도, 음악다방에서 천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노래를 하는 무명 가수가 있다고 치자. 가창력은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95년 대한민국 인구 중 몇 명이 그 노래에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노래는 감동을 위한 것이지 성량 크기나 바이브레이션 폭 측정대회가 아니다. 최근의 라이브 업소에 가보면 유명 업소들일수록 이 '핏대 올리기 형'가수들이 없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가수는 노래는 잘 하는데 왜 성공을 못 하는가 하고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다. 노래 잘 하는 건 누구나 인정해도 감동받는 이가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관객을 전율하고 만들고 공연장에서 나온 후 며칠이 지나도 그 목소리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전인권, 그는 이론적인 면으로 보면 하나도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그는 수 많은 음악 지망생들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최근에는 텔레비젼에서 가요계의 뒷면이니 스타의 그림자를 해부하니 하는 드라마를 방영하는 모양이다. 연예계의 허상만을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 주려는지 어쩔려는지 모르겠지만 가요계의 앞면은 그럼 누가 보여 주려는지 모르겠다. 가장 크고 당당한 앞문이 활짝 열려있는데, 오로지 '실력'이라는 신분증만 보이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데, 사람들은 옆길만 얘기하고 뒷문으로 들어간 자들만 호들갑 떨며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아마추어 여러분, 불과 얼마 후면 이 나라 대중 음악계는 여러분들의 손에 맡겨진다. 스스로 자존심을 포기한다면 그 누가 우리를 예술가로 불러 줄 것인가. 

글.신해철(그룹 N.EX.T의 리더)

-좋은곳에 가셨기를 ..명복을 빕니다.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How To Do What You Love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방법)



“How To Do What You Love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하면서 사는 방법)” 



“어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진부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늘 간단히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그러나사람들에게 단지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일을 찾고, 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니까요. 

이러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일 때, ‘일’이라는 단어와 ‘재미’라는 단어는 이미 정의상 반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생은 두가지로 나뉜 듯 보였습니다. 어른들이 시켜서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과, 자기시간이 남을 때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으로요. 물론 가끔씩은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놀이’가 재미없을 때도 있었지만 – 놀다가 다치거나 했을 때 – 그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이란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세상은 두가지 분류의 사람들로 나뉜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 어른들은 마치 어떤 저주라도 씌워진 듯 매일같이 일해야 했고, 아이들은 일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그 일을 위한 준비과정이라서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인 학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어른들은 ‘일’을 힘들어했고, 학교 다닐때가 좋을 때라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대책없이 원하는대로 놀게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일’이란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또 가끔씩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어려운 일도 해야한다는 것을 좀더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나는 ‘일’이라는 것이 ‘입에 풀칠한다’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이냐’가 되었습니다. 이상적으로 그 둘이 정확히 만난 지점을 찾으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마치 아인슈타인이 수년간 특허청 직원으로 일했었듯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나에게 ‘일’이란 것의 정의는 ‘세상에 내가 어떤 기여를 하고 갈 것이냐’가 되었고, 그 와중에 굶어죽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 수년간의 습관 때문인지 ‘일’에 대한 나의 의견은 여전히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이란 여전히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듯 했고,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위대한 성과를 낼수 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누가 그토록 어려운 일을 억지로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어떤 일이 ‘원래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임한다면, 자신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못 알아챌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내가 석사학위를 따며 배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만큼’ 좋아해야 하는 걸까요? 그것을 먼저 정확히 알지 않는 한, 당신은 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출 수 없을겁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수많은 사람들처럼 스스로 과소평가 한다면, 꿈을 찾는걸 너무 일찍 멈춰버릴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아마 당신 부모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거나,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또는 명예욕이나 최악의 경우 타성에 젖어 일하고 있을 겁니다. 

우선 여기 한가지 팁이 있습니다.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하세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뜻은, 지금 당장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 조차도 아마 일을 잠시 쉬고 커피를 한잔 하고 싶었지만, 참고선 먼저 하고 있던 일을 끝내야 했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나는 언제나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일이 너무 좋아서 다른일을 하는걸 상상조차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게는 도무지 그정도로 좋아하는 일은 없었거든요. 내게 선택권이 있어서 (a) 다음 한시간동안 어떤 일을 해야하거나 (b) 로마로 순간이동해서 여행을 할수만 있다면, 내가 로마 대신에 선택할 일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NO 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일하기보다는 캐리비언 해변에서 놀거나, 섹스를 하거나,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하고 싶겠지요. 따라서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의 정의에는 시간의 개념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게 아니라, 일주일 또는 한달 또는 더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다고 생각했을 때 행복할만한 일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스스로 돌아보고는 ‘와 내가 꽤 멋진걸 해냈네’ 하고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꼭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행글라이더를 타는 방법을 배웠다거나, 외국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거나 한다면 스스로 ‘와 이거 꽤 멋진데?’ 생각하겠지요. 한가지 이것을 테스트 하는 더 좋은 방법은,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이 해놓은 일을 보고 ‘와 대단하다/멋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겁니다. 

그럼 당신이 해서는 안될 일은 뭘까요? 그것은 제 생각엔 당신의 친한 친구들 외의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는 것입니다. 명예에 대해서는 일절 욕심을 버리세요. 명예란 세상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의견 외에, 당신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도대체 그게 왜 중요하다는 겁니까? 

이건 말하기는 쉬운 조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따르기는 어렵지요. 특히 당신이 아직 젊은이일 경우 더 그렇습니다. 명예란 마치 강한 자석과도 같아서 당신이 스스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생각도 왜곡하지요. 명예는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면 멋져보일 것 같은 일’을 하게 만듭니다. 

당신이 어떤 일이던 뛰어나게 잘 하기만 한다면, 명예는 따라올 겁니다. 우리가 지금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대부분 처음에는 그랬지요. ‘재즈’라는 장르가 떠오르네요 (미국 사회에서 ‘재즈’는 원래 흑인 하층민들의 저급한 음악이었다). 그러니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명예는 따라올 겁니다.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또 한가지 큰 이유는 ‘돈’입니다. 돈은 그 자체로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돈이 위험해지는 것은 ‘명예’와 결합되었을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종 말입니다. 비교적 안전하고 유망하면서도 돈도 많이 주는 그런 직종은, 아직 정말로 자신이 살면서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그들이 지금과 같은 돈을 받지 않고도 그 일을 할지 보면 됩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하기 위해 알바라도 할수 있는지 보는 겁니다. 변호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 받는 연봉을 못 받아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투잡을 뛰어야 한다면 그 똑같은 일을 할까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조언을 할 때 ‘돈’ 때문에 잘못된 조언을 하곤 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는 소설가가 되려는 아이와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케이스가, 의사가 되겠다는 아이와 소설가가 되라는 부모의 케이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이들은 이럴 경우 자신의 부모가 ‘물질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부모들이 물질적이라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은 대게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스스로에게 그랬던 것보다 훨씬 보수적인 선택을 강요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부모들 입장에선 아이들을 통한 성공보다는 위험요소가 더 많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8살짜리 아들이 높은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10대인 딸이 양아치와 사귀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누리는 흥분이나 재미는 함께 공유하지 못하지만, 아들이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딸이 덜컥 임신이라도 한다면 그 대가는 부모가 치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강력한 유혹들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 이토록 어렵다는건 놀라운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했듯이 어려서부터 “일 = 고통”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저주에 걸리는 겁니다. 설령 그 저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일지라도, 명예나 돈 등의 유혹에 의해 다시 끌려가 버리죠. 그러니 이 세상에 정말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생각엔 아마 수십억 인구 중에 수십만명이나 될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다는건 어려운 일입니다. 워낙 적은 사람만이 성공하는걸 보면 분명 그럴꺼에요. 그러니 이 과정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나무라지도 마세요. 사실, 이미 스스로 불행하다는 문제의식조차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왠만한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 주변의 동료들이 당신이 보기에는 경멸스러운 직업을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들은 아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꼭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아마 그럴겁니다. 

정말 위대한 일을 해낸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어렵습니다 – 왜냐하면 위대한 일을 해내는 것은 단순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면 그게 ‘일’이라고 느끼지도 않을것이기 때문에 –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그 일을 찾는 것이 보통 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그 일이 무엇인지 12살에 이미 알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인생이 마치 탄탄대로인냥 흘러가지요. 그러나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오히려 대부분 위대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커리어를 보면 마치 탁구 게임 같습니다. 그들은 대학에서 A 를 공부했다가, 그만두고 B 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결국에는 완전 다른 C 업계에서 유명해지지요. 

이처럼 한가지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옮겨가는 것은 가끔씩은 엄청난 ‘에너지’를 나타내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태함’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쉽게 포기해버리는 건가요? 아니면 용감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건가요? 스스로는 그 차이가 명확히 보이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정말 나중에 위대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는 실패자로 낙인 찍혔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는 말이지요. 

스스로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한가지 방법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던, 설령 그 일을 싫어할지라도, 그 일을 훌륭히 해내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당신은 일을 못하는 이유가 그 일이 맞지 않아서라고 핑계 대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경우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던 ‘잘 해내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이것입니다: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예를 들어, 당신이 소설가가 되는 꿈을 꾸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별수없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당신은 그 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서툴더라도 그 소설의 페이지를 한장씩이라도 쓰고 있습니까? 당신이 만들어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적어도 당신은 스스로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될거라는 허황된 꿈에만 취해있을 필요가 없지요. 스스로 쓴 글이 엉터리라면 적어도 그 꿈이 말도 안된다는건 알게 아닙니까. 

“항상 만들어내라”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게 해주는 주문과도 같습니다. 스스로 이와 같은 제약을 걸어둔다면, 자연스럽게 당신은 ‘해야 될것만 같은’ 지겨운 일들에서 멀어져서,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게 되어있지요. “항상 만들어내라”, 이 주문은 마치 물이 중력의 힘에 이끌려 지붕의 구멍을 찾아 흘러내려오듯이, 당신이 인생의 그 ‘일’을 찾도록 이끌어줄 겁니다. 

아 물론, 당신이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고 해서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당신이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두가지를 구별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꿈이 ‘가능해 보이는’ 현실로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소중히 보호해야 합니다. 

그 두가지를 구별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늘 고통스럽지요. 따라서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자신들의 기대치를 미리 낮춰 버립니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길거리의 행인을 붙잡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세의 유명 화가)처럼 그림을 잘 그리게 되고 싶으냐”고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사람들은 “오, 저는 그림 잘 못그려요.” 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라 ‘의도’를 말한겁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못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안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길거리 어떤 행인이든 그들이 마음만 먹고 향후 20년간 죽어라 모든 힘을 다해 그림을 공부하면 분명히 굉장한 발전을 이룰테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합니다. 수십년간 ‘실패’라는 녀석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봐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은 대답하는 겁니다, “나는 못해” 라고. 

또 한가지 당신이 아마 많이 들어왔을 법한 말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수는 없다’라는 겁니다 – 우리 중 누군가는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정말요? 대체 어떻게 그럴수가 있다는거지요? 미국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징병제인데, 그 제도는 폐지된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싫은 일도 하게 만드는 방법은 사실 ‘돈’과 ‘명예’를 통해 종용하는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은, 그냥 우리 사회에서 알아서 사라지는 듯 합니다. ‘집사/하인’과 같은 직업이 그렇게 사라졌지요. 수천년 동안 ‘하인’은 ‘싫어도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직업의 대표적인 예 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모든 선진국에서 ‘하인’들은 사라졌고, 선진국의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게 됬지요. 

그러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마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가 대신하게 되거나, 정말 아무도 없을경우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라는 말이 적용되는 경우가 또 있습니다. 자기가 꿈 꾸는 일만 하면서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 먹고 살기가 힘든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루트: 한 분야에 들어가서 서서히 명성을 쌓음에 따라 자신의 직업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늘리고 싫어하는 부분은 줄이는 방법. 

투잡 루트: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싫어하는 다른 일을 통해 버는 방법. 

자연스러운 루트가 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는 자신의 일을 잘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들어 젊은 건축가가 처음에는 돈이 되는 어떤 일이라도 닥치는대로 하다가, 점점 실력과 명성이 쌓임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방법은 단점은 오래걸리고 성공이 불확실하다는 점 입니다. 

투잡 루트는 당신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극단적인 예로는 아예 다른 직장에 메인 상태로 낮 동안에는 돈버는 일을 하고, 밤에 개인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작업하는 겁니다. 또 다른 극단적인 예로는 당신이 한동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만큼 ‘충분한’ 돈을 벌 때까지 아예 사랑하는 일을 접어두고 열심히 돈을 벌어두는 겁니다. 

이 투잡 루트는 자연스러운 루트보다는 흔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의식적인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리크스도 더 큽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활에 필요한 돈의 액수는 커지기 때문에, 처음에 단순히 돈을 벌려고 들어갔던 직장에 갇혀 못나고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보다 더 나쁜 경우는, 들어간 직장이 당신을 바꿔놓는 겁니다. 당신이 오랜 시간동안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적인 업무를 해왔다면, 어느새 당신의 뇌는 썩어버릴 겁니다. 그리고 돈을 제일 많이 주는 직업이 가장 위험한데, 그런 직업은 당신의 완전한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투잡 루트의 장점은 당신으로 하여금 장애물을 뛰어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직업군들 사이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예를들어 자연스러운 루트를 통해 건축가로 일하면서 조금씩 좋아하는 부분을 늘려나가다 보면 어느새 ‘제품 개발’로 넘어와 그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음악가’의 일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투잡 루트에서처럼 한가지 일로 돈을 벌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에는, 보다 넓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루트를 택해야 할까요?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당신이 얼마나 큰 위험을 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대가로 과연 사람들이 돈을 낼지 등에 달렸습니다. 만약 당신이 일하고 싶은 분야를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고, 그 일에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저는 당신에게 ‘자연스러운 루트’를 따라갈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 여전히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고 있거나, 남의 지시를 듣는 것이 질색이라면, 저는 ‘투잡 루트’를 권합니다. 물론, 그만한 위험을 질 수 있다면요.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어릴때부터 일찍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우리를 감탄하게 합니다. 마치 그들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남들보다 일찍 푼 것 처럼요. 그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답은 아마 틀렸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저에게는 항상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불평을 하는 아주 성공한 의사 친구가 한명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찾아가서 의대 진학에 대해 물어볼 때면, 그녀는 그들을 붙잡고 마구 흔들면서 “절대로 하지마!!!!”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도 실제로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녀는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의사가 되고 싶다는걸 알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야망이 넘쳤고 의지 또한 투철해서 그녀 앞에 보이는 모든 난관을 – 심지어 자신이 이 공부를 싫어한다는 감정 조차도 – 보기좋게 뛰어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한 어린 고등학생이 정해버린 인생을 평생 살아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젊은때는, 마치 모든 선택을 하기에 앞서서 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직업에 있어서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이 평생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해야 할 때, 당신은 어이없을 정도로 불확실한 정보만을 바탕으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당신은 다양한 직업들이 정말 어떤지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인턴십이라는걸 많이들 하지만, 모든 직업이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게 아니며, 한 인턴십에서 그 직업에 대해 가르치는건 마치 야구장의 볼보이가 야구 경기를 하는 법에 대해 배우는 수준과 같습니다. 

인생을 설계함에 있어서, 마치 다른 모든 것들을 설계할때와 같이, 당신이 보다 유동적으로 생각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따라서 당신이 정말 왠만큼 자신이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러운 루트’와 ‘투잡 루트’ 둘다 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는 제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로 한 이유와도 같습니다. 저에게는 ‘교수’가 되거나, 돈을 엄청나게 벌거나, 등등 컴퓨터를 공부함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았거든요. 

또한 가능한한 젊을 때부터, 당신은 최대한 많은 종류의 역할을 요구하는 직업들을 경험해보는게 현명할 겁니다. 반대로 극단적인 경우의 ‘투잡 루트’는 이래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 버는 직업을 하다 보면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만약 당신이 먼저 돈을 많이 번 후에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채권 트레이더로 10년간 열심히 일했는데, 막상 회사를 나와보니 본인이 글 쓰는걸 끔찍히 싫어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땐 어떻게 하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리 돈이 있으면 고민이 쉬울거라고 얘기합니다. “나에게 10억원만 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을텐데.”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약들은 당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막상 이런 고민이나 제약을 없에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뭘 어찌해야 될지조차 모릅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갑자기 엄청난 유산을 상속한 사람들을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돈’ 또는 ‘재무적 안정’ 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재무적 안정’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 자유를 약속하는 직업들은 선택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건, 고난이 따를 것을 예상하세요.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과정은 정말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합니다. 당신이 설령 그것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30대나 40대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분명한 목표지점이 보인다면, 당신은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일’이란 (괴로운 것이 아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는걸 알고 있다면, 당신은 거의 다 왔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폴 그레이엄‘ (프로그래머, 벤처 기업 투자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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