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블로형의 형



캐나다에서 온 타블로의 형님
카나디안 랍스타는 좋아하시나요?

루저발언을 한 여대생 이후 새로운 파국의 인물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훗훗
표현은 자유지만
군대 쏙쏙 피하고 계신 아우님께 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21C는 그야말로 듣보잡의 아도시대!
나는야 유스트라다무스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존재 그 자체가 주는 풍요로움

<20세기>을 봤는데, 거기서 왕년에 록스타를 꿈꿨던 편의점 사장 켄지가 바이러스로 도쿄 시민들을 몰살하려는 거대 로봇과 싸우러 나가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누가 이런 얘기를 했지. 록 음악을 하면 27살에 죽는다고. 지미 헨드릭스, 브라이언 존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왠지 나도 27살에 죽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어느덧 28살 생일을 맞이했고 실망했어. 뭐야, 난 로커가 아니었나? 하고…. 하지만 다 늙어서도 록을 하는 굉장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 죽으면 훌륭할 거란 생각은 관뒀어.”

그 다음날 난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한 롤링 스톤스 공연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를 봤는데, 켄지의 물음에 대한 질문이 입체음향으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환갑을 훌쩍 넘은 할아버지들이 뿜어내는 그 엄청난 에너지라니. 얼굴에 주름이 얼마나 많건 그들은 한없이 젊었다. 아무리 빌 클린턴이 장모님을 데리고 구경 온 공연이라고 해도 그들과 한몸이 된 관객 역시 젊었다. 여기서 생물학적 나이를 따진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모든 사람들이 평생 로큰롤을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결혼해서 애들을 먹여 살리고 험난한 현실 세계에 적응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의 건조함 속에 닳아 젊음을 잃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몹시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로큰롤은 아니다. 바흐의 파르티타를 연주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게 유리하다. 세상엔 젊은이들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나이 든 사람들의 자리도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보편규칙이라고 들이미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예외는 있다. 힐러리 한처럼 바흐를 근사하게 연주하는 천재 소녀도 있고 환갑이 넘어서도 무대 위에서 방방 뛰며 록을 하는 믹 재거 같은 할아버지도 있는 거다. 이들은 성숙의 규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그들이 속해 있는 세대는 더 풍요로워진다. 성숙에 대한 보편규칙 따위는 믿지 말라. 나이에 맞는 일 따위는 세상에 없다. 한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나이에 맞는 일만 한다면, 그 세대는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젊음과 성숙은 각각 젊은이들과 어른들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개성이고 성취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이런 말이 통하려면 역시 환경이 맞아야 한다. 어린애들은 시험에 치여 젊기도 전에 노땅이 되어버리고, 집단의 규칙에 끌려다니느라 스스로 성숙할 기회를 건너뛰어 그냥 주름살 많은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이 나라에서 그런 다양성을 기대하는 건 그냥 무리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그동안 정신적으로 생존할 길이나 터득하기로 하자. 젊음과 성숙에 대한 고찰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듀나/영화평론가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114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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