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7일 화요일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中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 20년 이상, 어느 회사에도 어떤 조직에도 속하는 일 없이 살아온 인간이라서,회사가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매일매일 회사에 가서,
한 자리에 조르르 모여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체 뭘 하는 걸까 하고 늘 신기해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그런 일을 일일이 신기하게 여기는 내 쪽이 더 신기할지도 모르겠지만.


한편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은 전기통신사와 평범사에서 회사원으로 오래 근무하였다.
그래서 한 번은 "미즈마루 씨, 회사란 대체 어떤 곳이죠?" 라고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무라카미 군, 세상에서 회사만큼 재미있는 곳이 없다니까.아니 일은 제대로 안하는데도 월급은 꼬박꼬박 주지, 점심 먹으러 나가면 그대로 술자리지, 예쁜 여자들이 잔뜩 있어서 사내 연애, 불륜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세상에 그런 데가 어디 있겠어...... 후후후" 란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야 원 용궁으로 놀러 간 토끼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전기통신사나 평범사의 사원이 모두 그렇게 행복한 인생을 보내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는 역시 안즈이 미즈마루라는 인격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말이지, 내가 사표를 냈는데도 누구 하나 위로해 주지 않더라니까. 덕분에 금방 수리되고, 5분 만에 사직해 버렸지 뭐. 상사가 조금쯤은 말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라고 화백은 팔짱을 끼고 뚱하게 말하지만,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원을 누가 말리고 위로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즈마루 씨의 언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과연 나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발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지곤 한다. 역시 연륜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에 비하면 나는 회사에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는 탓에, '회사적인 윤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조우한 각종 문제의 태반이, 그런 상호 이해의 차이에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쪽은 상대방의 사고 회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은 내 쪽의 사고 회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편집자와 일을 할 경우, 나는 개인으로서 작가이며 상대방은 출판사의 사원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동시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경우,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모모 출판사의 '사원'으로 보지 않고, 우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본다.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가능하면 그 개인의 진정이 담긴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그것이 작가의 편집자의 건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만약 회사의 견해가 있을 경우
에는 '회사의 견해는 실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나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란 식으로 동등하게 제시해 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
없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씨, 그건 당신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회사의 의견입니까, 어느쪽입니까?"
라고 추궁하면,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그게 그...." 라며 말을 얼버무리고 만다. 아니면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습관적인 사고 회로의 문제라가 줄곧 생각해 왔다. '이건 회사의 의견이고, 이건 내 의견이다' 라고 구분하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은 탓에, 막상 누가 '자, 한 번 구별해 보세요'라고 하면 쉽사리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국 그런 타입의 인간과 몇 번이나 조우한 후에야, '혹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분명한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회사의 의견을 타인 앞에서 - 이 경우는 내 앞에서 -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발생할 개인적인 책임 같은 것을 적극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자네는 무라카미한테 회사와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고 했다는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인가' 라고 상사에게 힐문당할 위험을 배제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유나 사정이야 어떻든,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결국 그런 상대와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 그야 뭐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개인적이고, 아주 정직한 작업이므로.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회사란 것의 생리를  잘 모르는 나의 그저 이기적인 '개인의 윤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혹 내가 잘못된 것이 내 쪽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뭐 그건 그렇고, 일생에 한 번쯤 나도 후학을 위하여 미즈마루 씨처럼 컬러풀한 회사 생활을 경험하고 싶다. 흐음 그래, 평범사라는 회사가 그렇게 재미있는 직장이었단 말이지....


무라카미 하루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PS.
Rest in peace 안자이 미즈마루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좋아요

Blogger templates

Search This Blog

Blogroll

Pages

Pages -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