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다.우리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고통에는 꼭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포함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지 못하는 괴로움, 사업의 실패로 인한 괴로움, 경제적 괴로움 등도 다 고통이다. 물론 육체적 고통은 더욱 괴롭다. 치통, 두통, 복통 등 각종 통증은 우리의 정신마저 마비시킨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인간은 그 고통을 이겨 보려고 발버둥친다. 좀더 편안한 상태, 쾌적한 상태에 이르려고 죽어라고 노력한다. 그러나 설사 고통이 끝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잠깐뿐이다. 곧바로 고통만큼이나 무서운 권태가 우리의 가슴을 송두리째 갉아 먹는다. 가장 좋은 예가 사랑이다. 상사병을 앓아가며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해, 차지하지 못해 안달하던 사람도 막상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사랑을 이루고 나면 곧이어 권태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수많은 연애소설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남녀 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치의 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죽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은연중 우리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의 절정 가운데 나나 또는 상대방이 죽어 버리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비극적 러브 스토리가 많은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랑의 절정 뒤에는 권태가 온다. 성공 다음에는 권태와 함께 소위 <성공 우울증>이 온다. 병(病)의 치유 다음에도 권태가 온다. 아프지 않으면 권태롭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고통에 관한 문학이거나 권태에 관한 문학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참여나 순수냐, 민중문학이냐 부르주아 문학이냐, 따질 일이 못 된다. 고통에 관한 넋두리가 참여문학, 민중문학이요 권태에 관한 넋두리가 순수문학, 부르주아 문학이다. 고통이든 권태든 다 괴로운 것들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리얼하게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있는지 비교해서 경중을 가릴 바가 못 된다.


한평생 고통만 겪으며 사는 사람도 있고 한평생 권태만 느끼며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개는 권태도 고통도 번갈아 느껴가며 살아간다. 태어나서부터 귀족인 사람은 배고픈 고통을 경험해 볼 겨를이 없으니 부르주아적 권태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 역시 병에는 걸리게 마련이니까. 석가모니가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번민하다가 출가한 것도 좋은 보기가 된다.


결국 생로병사를 우리는 피할 수 없으며, 그 사이사이에 오는 권태도 피할 수 없다. 민중이나 귀족이나 그래서 다 평등하다. 민중문학, 귀족문학 하고 나누지 말라. 민중이건 귀족이건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다 불쌍하다.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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