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들 돈을 내고 여자를 사고 있다

비피하기「雨やどり」
-무라카미 하루키 <화요일의 여자들> 中에서





최근에 어떤 소설을 읽다가, 돈을 내고 여자와 성교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남성의 조건 중 하나라고 하는 문장을 마주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런 문장을 읽으면 과연 그렇겠구나, 생각한다.
  과연,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게 반드시 내가 그 주장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사고 방식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납득할 뿐이다. 적어도 그러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상황은 납득이 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나도 돈을 내고 여자와 성교하지는 않는다. 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별로 해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고, 이른바 취향의 문제다. 그래서 돈을 내고 여자와 자는 사람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연히' 그러한 처지가 되어 버린 것뿐이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을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들 돈을 내고 여자를 사고 있다고.

  예전에 훨씬 젊었을 때에는 물론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지극히 단순하게 섹스가 공짜라고 생각했었다. 일종의 호감과 호감 - 좀더 다른 표현도 있겠지만 - 이 만나게 되면, 거기에 극히 자연스럽게, 자연 발화처럼 섹스가 생기게 된다는 사고 방식이었다.

  젊었을 때에는 분명히 그것으로 잘되어 나갔으며, 무엇보다도 지불할 돈 자체가 없었다. 이쪽에도 없었고, 저쪽에도 없었다. 생판 모르는 여자의 아파트에서 자고, 아침이 되어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차가운 식빵을 나누어 먹는 것과 같은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나름대로 성숙해지면서 우리는 인생 전반에 대해서 좀더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즉 우리의 존재, 혹은 실재는 다양한 종류의 측면을 긁어 모아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분리가 불가능한 총체라는 견해다.

우리가 일을 해 돈을 벌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투표를 하거나, 밤에 야구 시합을 구경하러 가거나, 여자와 자거나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의 것이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성생활의 경제적 측면이 경제 생활의 성적 측면이 될 수가 있다.

  적어도 요즘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간해서는 내가 읽던 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아주 간단하게, 돈을 내고 여자와 자는 것은 제대로 된 인간이 하는 짓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으로서만 존재하는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참으로 여러가지 것을 일상적으로 사거나 팔거나 교환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무엇을 팔고 무엇을 사들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략





밖으로 나오자,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여름 비라서 그다지 오래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까 신기하게도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반찬 가게는 벌써 오래 전에 문을 닫았고, 고양이가 비를 피하던 소형 트럭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오모테산 도로까지 걸어갔는데, 배가 고파 가게에 들어가 장어를 먹었다.
  나는 장어를 먹으면서, 2만 엔을 지불하고 그녀와 자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자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으나, 돈을 지불하는 것은 좀 이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옛날 섹스가 산불처럼 공짜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정말로 산불처럼 공짜였던 것이다.


청년 하루키가 
무려 1985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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