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댄스음악스럽지 않은 국내산 레어급 전자음악 7선

춤 추 지 마 

댄스음악스럽지 않은 

 국내산 레어급 전자음악 7선

-더이상 전자음악가지고 
춤추지 말 것.
Lo-Fi한 신스팝,칠웨이브,
슈게이징스러운 
연회색빛 뻔하지 않은 그루브의 전자음악들을 살포시 소개한다.
물론 영상을 함께 보며 들는다면 피자에 파마산치즈가루를 
뿌린듯 더욱 더 
귀에 착착 감길 것.



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메죵 키츠네(Kitsune Maison) x 마이큐(MYQ)


이미 뭐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껍니다.
마이큐(MYQ) 형님의 
신스 팝 넘버 'LIVE FOREVER'
한국인 최초 메죵 키츠네(Kitsune Maison) 컴필에
수록됐다는거! 

메죵 키츠네(Kitsune Maison) 는 패션, 디자인, 음악을 아우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렉트로닉 레이블로 음악뿐 아니라 매 시즌별로 의류와 패션아이템들도 출시되고 있는 멋진 레이블입니다. 특히나 그들이 발표하는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전세계 다양한 일렉트로닉 밴드들이 참여하여 이미 뭐 센스있는 친구들은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컴필앨범입니다.

메죵 키츠네의 2013 초겨울에 있었던 
Maison Kitsuné Fall Winter 2013 at Pitti W 영상입니다.


이번 마이큐의 참여는 
키츠네 공식 프랑스 홈에도 이렇게 공지가 되있군요!




마이큐팬이자 메죵키츠네팬들은
우리모두 다같이 정말 축하 또 축하합시다!!

LIVE FOREVER - 마이큐(MY Q) MV






Breakbot의 귀요미 앨범커버들+뮤비+믹스셋



 프랑스에서 어찌 이런 올드스쿨한 감성이 나올 수 있을까.. 긴머리 수염난 외모는 더더욱 의외이고 함께 소속된 Busy P,Justice 등이 소속된 에드 뱅어 (Ed Banger)의 로맨티스트 Breakbot 







올드스쿨을 기반으로 사랑스러운 사운드와
계속 듣게 되는 마법같은 달콤한 멜로디 거기에
집요하리만큼 꾸준한 한결같은 앨범 커버를 소개해볼게요.
(Aphex twin 만큼이나 본인 캐릭터를 잘 알고 좋아하는거 같아요.)






You Should Know 리믹스 싱글 자켓부터 커버가 성전환되었습니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정체를 모르겠으나 앞으로의 커버가 기대가 되네요.


뮤비하나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처음 Breakbot 을 접하게 된 곡이자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Breakbot 가장 유명한 히트곡 Baby I'm Yours

뛰어난 감각의 원화로 색감으로
이루어진 영상 거기에 곡은 말할 것 도 없구요..
베이스라인과 Irfane의 독특한 보이스가 절묘합니다.





Breakbot - Baby I'm Yours feat. Irfane MV




+보너스
가장 최신의 Breakbot 디제이 믹스 셋
보일러룸 라이브 동영상
-본인 곡 뿐만 아니라 예전 소울풀(soulful)한 곡들을 직접 리믹스&믹싱합니다.사운드 클라우드나 유투브에서 DJ 셋듣는 맛도 쏠쏠한 뮤지션이에요.

BREAKBOT Boiler Room DJ Set




Breakbot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reakbot

Breakbot  사운드 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breakcloud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작업실



홍대에서 마포 대흥으로 이사한
작업실 pic

최근
100년이상된 콘트라 베이스 녹음&촬영도 있었습니다.
활발하게 돌아가는 스테디 작업실!

놀러들 오세요.

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스테디사운즈 x 뮤지카누베








스테디사운즈 의 새 식구,
  뮤지카누베 (Musica Nube)를 소개합니다!
뮤직카누베는 2012년 4월 리더 원다희, 보컬 함성희를 주축으로 결성된
홍대를 기점으로 활동중인 몽환적이고 그루브한 느낌의 4인조 혼성밴드
(원다희,함성희,우혜원,곽석규)입니다.



WOO HYEWON

WON DAHUI


HAM SEONGHUI



KWAK SEOKGYU

소울풀한 보이스와 재즈의 즉흥적인 연주요소가 가미된 환상적이고 색다른 조화로 음악적 방향성을 제시하며 2013년 싱글 앨범 [Impossible] 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싱글앨범에는  'Impossible' 과  '길'이란 두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두곡 전부 분위기가 남다른 매력적인 곡입니다.

뮤직카누베의 첫 싱글 [Impossible] 커버

기존 주류 밴드음악과는 다른 색깔있는 음악적 활동이 기대되는 팀입니다.
스테디사운즈의 뮤지카누베 많은 사랑과 응원을 부탁드릴게요.


뮤지카누베 (Musica Nube)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usicanube






MusicaNube-Impossible(Teaser)
듣기





뮤지카누베의 보컬과 건반을 맡고 있는
함성희&원다희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헤르마프로디테 Hermaphrodite (양성구유)



헤르마프로디테 Hermaphrodite (양성구유)



양성구유 : 하나의 몸에 두개의 성기



우리는 조선시대에 사방지라는 여인이 규방을 드나들며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발각된 적이 있음을 안다. 서양에서는 사방지와 같은 이를 가리켜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라 불렀다. 듣자하니 헤르마프로디테란 일반적으로 클리토리스의 자리에 남자의 성기가 들어서고, 그 아래로 여자의 질이 달린 형태라 한다. 양성구유자의 남자 성기는 결국 거대한 음핵에 해당하는 셈이다.
결국 양성구유란 클리토리스 기형을 가진 여성이란 얘기가 되는데, 그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우연히 접한 어느 일본의 그림 속에서는 가슴이 없는 사내가 두 개의 성기를 갖고 있다. 헤르마프로디테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얘길까?

실마키스의 샘 
연못안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실랑이를 한다. 저 남자는 자웅동체에 제 이름을 빌려 준 헤르마프로디테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사이에서 태어난 15세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따르면, 어느 날 헤르마프로디테가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샘의 요정 살마키스(salmacis)가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헤르마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앗다. 그러자 살마키스는 자신과 헤르마프로디테를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원한다. 마뷔즈는 사랑을 강요하는 샘의 요정 살마키스와 그녀의 구애를 뿌리치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려는 헤르마프로디테의 격투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얼굴을 돌리고, 도움을 청하려는 듯 팔을 허공으로 뻗고 발을 배 도망가려는 헤르마프로디테. 팔과 다리늘 이용해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억지로 붙잡아 두려는 살마키스. 어지럽게 흐트러진 머리칼을 그녀가 정열적인 성격의 소유자임을 암시한다. 서로 엉켜 있는 두 개의 몸과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의지. 하지만 그 의지의 강도는 살마키스 쪽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헤르마프로디테는 영원히 그 정열적인 여자의 몸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 된다. 화면 오른쪽 바위 위위로 나무의 일부가 보이고, 그것과 대칭을 이루며 화면 왼쪽으로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 그러면서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기괴한 생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 생물은 헤르마프로디테와 살마키스가 하나로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몸을 합한 후의 헤르마프로디테는 자신이 자신 안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자립성이 없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슨 심술인지 그는 신들에게 앞으로 살마키스의 샘에서 목욕을 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와 같은 운명을 갖게 해달라고 빈다. 그의 바람은 받아들여져 이후 살마키스의 샘에서 목욕을 하는 남자는 모두 양성(兩性)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변신』에서 오비디우사가 해석하는 바에 따르면 살마키스가 범하기 전의 헤르마프로디테는 성적 경험이 전혀 없는 사춘기 이전의 소년으로서 아직 성적으로 미분화된 상태, 즉 성이 없는(asexual)상태였다고 한다. 그라다가 살마키우스와 몸이 합쳐져 비로소 양성(bisexual)의 성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오비디우스 이전의 고대의 민간신앙에 의하면 헤르마프로디테는 살마키스와 결합될 필요 없이 아예 태어날 때부터 양성이었다고 한다. 지극히 여성적인 아프로디테와 지극히 남성적인 헤르메스의 상반하는 성질이 탄생할 때부터 이미 헤르마프로디테의 몸에 잠재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해석이다.



플라토닉 양성구유 
한스 부르크마이르(Hans Burgmair,1473~1531)의 목판화는 두 개의 다리에 두 개의 상체가 맞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성서에 나오는 변신 이야기다. 여기서는 합체가 아니라 거꾸로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빛과 어둠, 하늘과 당, 그밖의 모든 것인 분리되는 「창세기」에서 신은 아담으로부터 이브를 분리해낸다. 이를 통해 남녀의 성 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머 분리되기 이전의 "사람", 즉 아담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담으로 부터 이브가 분리됐다면, 그의 몸 속에 이미 두 개의 성이 공존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창조주는 자기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담이 양성이듯이 그 모델인 신 자신도 양성이라는 얘기? 어쨌든 아담과 이브가 사랑 속에서 하나가 되려 한다면, 그것은 곧 원점으로의 복귀, 말하자면 한번 분리된 육체가 다시 하나가 되려는 자연적 원망의 표현일 게다. 파두아의 휴머니스트 마르칸토니오 파세리(Marcantonio Passeri,1491~1563)의 메달에는 두 개의 성을 가진 생물이 묘사되어 잇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초에 세 개의 성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을 통해서 플라톤은 성애의 기원을 설명한다. 거기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종족은 원래 계란 모양의 몸통, 두 개의 얼굴이 달린 하나의 머리를 갖고 잇었다고, 한다.

이들은 각각 네 개씩 달린 팔과 다리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굴러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이 신에 대항하여 반란을 기도하자, 분노한 제우스가 벌로써 이들의 몸을 둘로 갈라놓는다. 그 후 이들은 제 반쪽을 찾아다니다 발견을 하면, 팔을 돌려 서로 끌어안으려 하나, 성기가 뒤에 붙어 있어 교합에 성공하지 못한다. 이를 가엾이 여긴 제우스가 이들의 성기를 앞쪽으로 옮겨주자, 비로소 남녀의 교접을 통해 생식이 가능해지고, 동성간에는 적어도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세 개의 성을 도입하여 이성애와 동성애를 설명한다. 남녀의 사랑, 레즈비언과 게이의 사랑. 이 모두가 실은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다. 안드로기니에 (Androgynie)는 잃어버린 원점으로 돌아가고픈 동경의 상징이다. 자기의 꼬리를 문 뱀의 자세가 '영원'을 상징하듯이 여기서는 처음과 끝, 시원(始原)과 목표가 하나가 된다. 이로써 성적 분할, 성적 역할에 속박되거나 종속되지 않는 안드로기니에는 '사회적 유토피아'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플라톤은 이 3개의 성(남남,여여,남녀)을 각각 세 개의 천체, 즉 해(남남)와 달(남녀)과 땅(여여)에 결부시킨다. 태양은 적극성, 땅은 수동성, 달은 그 중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빛을 비추는 것과 빛이 비추어지는 것, 남과 여의 양극성은 하늘과 땅의 양극성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양성구유...(중략)...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의 혼돈. 이것이야 말로 안드로기니에의 성질을 띤 것이다. 안드로기니에는 혼돈이자 동시에 조화, 말 자체에 그 양극성이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그리스어의 안드로스(andros;남자)와 기니에(gynie:여자)의 복합어로, 하나의 몸 안에서 남녀가 일체를 이루는 자웅동체 상태를 말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몸 안에서 남녀가 일체를 이루는 자웅동체 상태를 말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여성도가 높은 남자만을 안드로기니라 부르고, 반대로 남성도가 높은 여성은 따로 기난더(gynander)라 부른다. 미술작품에서도 남녀가 완전히 동등한 수준으로 융합되어 있는 예는 사실 매우 드물며, 일반적으로는 어느 한 족의 성이 다른 쪽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곤 한다. 제 3의 성, 즉 안드로기니에라는 발상은 플라톤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빌어 "안드로기니에가 이미 경멸어가 되었다"고 한 플라톤의 언급에서 이를 추측할 수 있다. 헤르마프로디테와 안드로기니에는 종종 혼동이 되어 사용되기에 두 개념을 서로 엄밀히 구별하기란 사실 어렵다. 둘 다 중성적 존재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헤르마프로디테가 남녀의 성기를 모두 갖고 있어 남자와 여자,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실제의 중간자라면, 안드로기니에는 외견상으로는 그 어떤 이상한 점도 없는 가상적 중성인이라 할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해석에 따르면 양쪽의 성을 갖는 것은 남성에게는 정력의 감퇴를 의미한다. 헤르마프로디테도 샘의 요정 살마키스와 한몸이 된 후 생식기능을 잃어버린다. 살마키스가 의인화하고 있는 물[水]이 특히 여성적인 요소이며, 남성의 몸을 녹여버리는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헤르마프로디테의 개념이 성기라는 육체의 외적 특징을 가르킨다면, 안드로기니에는 주로 내면의 심성이나 성격을 가르킨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둘의 관계를 말하자면, 헤르마프로디테라는 자웅동체의 외적 형상은 안드로기니에라는 내면의 심성을 구체적으로 의인화한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게다. 말하자면 헤르마프로디테라는 특이한 자웅동체의 형상은 남성적 심성과 여성적 심성의 융합으로 규정되는 안드로기니에를 묘사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 작품에 나타나는 가시적인 특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헤르마프로디테와 안드로기니에 사이에 공통점이 잇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상으로도 외견상의 이상함이 경원시되어, 헤르마프로디테는 16세기 내내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앗다. 헤르마프로디테 에르사르트 쇤(Erhard schn)의 <주피터와 티레시아스>는 헤르마프로디테를 다룬 몇 안되는 작품 중의 하나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에 풍만한 가슴, 가는 허리, 여성의 몸에 남성의 성기가 달린 헤르마프로디테 하나가 막대기로 교미를 하는 한 쌍의 뱀을 건드리고 있다.구름 위에 앉아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주피터다. 그는 '섹스를 할 때 어느 쪽이 더 쾌감을 느끼느냐'는 문제를 놓고 주노와 벌어진 논쟁에서 '여자 쪽의 쾌감이 더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논쟁을 해결해줄 유일한 존재는 양쪽의 성을 다 경험한 티레시아스 밖에 없었다. 티레시아스는 때로는 숲속에서 교미하는 뱀을 떼어내어 여자로 변신했다가, 7년 후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남자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그러게 양성을 다 체험한 티레시아스의 대답은 "여자"였다. 성을 바꾸어 가며 살던 그는 결국 남자가 되고 마는데, 아마도 그것을 후회했을 게다. 쇤이 묘사하고 잇는 티레시아스는 변신의 과정 중에 있는 모습, 즉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모습이다. 헤르마프로디테를 묘사한 예술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특히조각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두 대의 헤르마프로디테, 즉 베를린의 헤르마프로디테와 페르가몬의 헤르마프로디테는 이 현상에 대한 두 개의 상이한 해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를린 헤르마프로디테느 미소년의 몸에 여성의 가슴을 갖고 있는 데에 반해, 페르가몬의 헤르마프로디테는 여성의 몸에 페니스를 달고잇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들 조각상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르네상스인들이 알고 있던 헤르마프로디테상(像)은 침대에 누워 있는 유형과 서서 제 옷을 치켜들어 페니스를 노출하는 유형, 두 가지뿐이었다. 옷을 들어 거대한 남근을 과시하는 풍요의 신 프리아포스를 연상시키는 헤르마프로디테의 두 번째 유형은 루벤스가 연필화로 그려 남기기도 했다. 1655년 렘브란트 역시 똑같은 포즈를 차용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은 헤르마프로디테와는 전혀 관계없다. 그림 속의 모델은 화가의 연인이이었던 헨드리케(Hendrickje)였기 때문이다. 안드로기니에 육체적 특성으로서 헤르마프로디테라는 주제가 고대에 전성기를 맞았다가 그 후 점차 쇠퇴해간다면, 심성의 특성으로서의 안드로기니에는 인간의 나체가 재평가를 받게 된 이탈리아 성기 르네상스(cinquencento)에 이르러 고대 이래로 잃어버렸던 중요성을 다시 획득하고, 사회적-예술적 이상미의 전형으로서 마리에리슴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된다. 이 시절 피코 델라 미란도라(Giovanni Pico dela Mirandora)는 "아름다움이란 다른 것, 상반되는 것이 융합한 결과"라 규정했다. 나아가 피코는 두 개의 상반되는 원리인 비너스와 마르스의 쌍을 예로 들어, 비너스가 마르스를, 즉 아프로디테가 헤르메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상반되는 원리인 헤르메스 없이는 그녀자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는 쌍둥이 오누이,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헤르마프로디테다. 안드로기니에는 두개 성의 하모니이다. 두 개의 상반되는 원리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는 긴장이 생긴다. 이것이 '안드로기니에'라는 말의 뜻이다. 타자 속의 자신, 남성 속의 여성, 여성 속의 남성. 이들 안드로기니에들이 미숙작품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까? 결론을 말하자면 "남성적인 여성(Gynander)보다는 "여성적인 남성(Androgynie)"으로 더 자주 묘사된다. 어저면 이는 "비밀스런 아름다움을 가진 남자"와 "용감한 여전사"중에 어느 것을 입은 더 선호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가령 안드로기니에가 수수께끼로 가득찬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인데 반해, 기난더는 갑옷을 입은 호전적인 아마조네스와 같은 타입이이어서 이상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고대에도 여성의 남성화를 테마로 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여성화(Effemination)를 표현한 작품의 수에 비하면 그 수가 현저히 적다.




이미지는 직접 임의로 웹페이지에서 퍼와서 본문과 연관이 없을수도 있음

성의 미학/미와 쿄코, 진중권著/세종서적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


인생은 고통이 아니면 권태다.우리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고통에는 꼭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포함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지 못하는 괴로움, 사업의 실패로 인한 괴로움, 경제적 괴로움 등도 다 고통이다. 물론 육체적 고통은 더욱 괴롭다. 치통, 두통, 복통 등 각종 통증은 우리의 정신마저 마비시킨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인간은 그 고통을 이겨 보려고 발버둥친다. 좀더 편안한 상태, 쾌적한 상태에 이르려고 죽어라고 노력한다. 그러나 설사 고통이 끝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잠깐뿐이다. 곧바로 고통만큼이나 무서운 권태가 우리의 가슴을 송두리째 갉아 먹는다. 가장 좋은 예가 사랑이다. 상사병을 앓아가며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해, 차지하지 못해 안달하던 사람도 막상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사랑을 이루고 나면 곧이어 권태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수많은 연애소설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남녀 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치의 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죽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은연중 우리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의 절정 가운데 나나 또는 상대방이 죽어 버리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비극적 러브 스토리가 많은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랑의 절정 뒤에는 권태가 온다. 성공 다음에는 권태와 함께 소위 <성공 우울증>이 온다. 병(病)의 치유 다음에도 권태가 온다. 아프지 않으면 권태롭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고통에 관한 문학이거나 권태에 관한 문학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참여나 순수냐, 민중문학이냐 부르주아 문학이냐, 따질 일이 못 된다. 고통에 관한 넋두리가 참여문학, 민중문학이요 권태에 관한 넋두리가 순수문학, 부르주아 문학이다. 고통이든 권태든 다 괴로운 것들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리얼하게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있는지 비교해서 경중을 가릴 바가 못 된다.


한평생 고통만 겪으며 사는 사람도 있고 한평생 권태만 느끼며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개는 권태도 고통도 번갈아 느껴가며 살아간다. 태어나서부터 귀족인 사람은 배고픈 고통을 경험해 볼 겨를이 없으니 부르주아적 권태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 역시 병에는 걸리게 마련이니까. 석가모니가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번민하다가 출가한 것도 좋은 보기가 된다.


결국 생로병사를 우리는 피할 수 없으며, 그 사이사이에 오는 권태도 피할 수 없다. 민중이나 귀족이나 그래서 다 평등하다. 민중문학, 귀족문학 하고 나누지 말라. 민중이건 귀족이건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다 불쌍하다.


-마광수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직접 찍은 수족관 속 물고기들
 
새벽녃 문득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몸은 고되서 바람빠진 풍선같은데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어.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인생을 산다는거 즉 삶을 산다는건
평생 고통속에서 웃음을 찾아가는 짓 혹은 행위 아닐까.
분명 난 지금 힘들지만 웃고 있어.
그래 뭣도 없지만 그냥
행복한거야.

진부하고 특별할 꺼 없는 내 이야기지만
오늘 내게 있어 참 소중한 웃음이었어.


 소심한 물고기들-윤상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AMEBICㅣ아미빅 - 벌렁벌렁두근두근

 
 
 

벌렁벌렁두근두근벌렁벌렁두근두근벌렁벌렁.
벌렁벌렁벌렁벌렁.
실제로 전체를 보다 보면 그렇게 웃기진 않은데 이 문단만 놓고보면 그야말로 병맛.

[뱀에게 피어싱]으로 유명한 '가네하라 히토미' 누나의 [아미빅] 中

kanehara hitomi
가네하라 히토미
 
 
 
 
아미빅
AMEBIC :
 [Acrobatic Me-ism Eating away the Brain, it causes Imagination Catastrophe.]
 
'아크로바틱한 자기중심주의가 뇌를 침식해 일어나는 상상력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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